내게 있어 예수를 믿는다는 것

이 번 동일본대지진의 최대피해지 중 한 곳인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에 다녀왔습니다.

덴뿌라버스 볼런티어팀으로 참가했는데 함께 동행한 사람은 23명이었습니다. 한국인은 그리고 예수믿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듯 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교회집사님들과 오랜만에 돈돈정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자원봉사에 대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가게를 운영하시는 박신미집사님께서는 주먹밥을 만들어 주셨는데 정말 맛있었습니다.

밤10시 신주쿠서쪽출구쪽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하루 중 6-7시간밖에 도와주지 못하는, 그러니까 비용에 비해서 그렇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망설였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셨기에 그대로 따랐습니다.

버스안에서 자기소개를 하면서, 한국인이 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고, 약간의 고립감도 느꼈습니다. 아마 내 옆에 앉은 친구가 말이 없는 친구이고, 내가 창가에 앉아 있었기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친구와 계속 같은 곳에서 함께 일했죠..

이시노마키까지는 정말 멀었습니다. 아침... 해가 뜨고도 한참을 달려서 7시30분경에 볼런티어센터(이곳에서 이시노마키의 자원봉사업무를 관리)에 도착했고, 거기서 주먹밥을 조금 먹었습니다. 작업구역을 배정받는 동안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약간의 몸풀기운동(?)을 하였고, 이윽고 작업구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우리 팀은 해안가에서 약 600미터정도 떨어진 농가가 있는 마을이었는데, 마을 입구부터 망가진 가구, 가옥의 일부, 바닷물에 젖은 이불, 옷가지등이 집주변에 나와 있었는데, 우리는 조금 안쪽으로 진입하여 아직 집안내부의 못쓰는 물건들을 정리하지 못한 집들을 배정받았습니다.

집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뻘과 뭔가가 썩은듯한 냄새가 진동하였고, 집내부에는 뻘과 함께 젖은 옷가지와 이불, 책들, 장난감 등이 뒤섞여 있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난장판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6-7시간정도 밖에 없는데...

순간적으로 왜 이렇게 침수된 가옥을 그대로 써야하는지 의문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 마을에 사는 나까사토라는 영감님으로부터 그 이유를 듣게 되었습니다. 피난처(학교)도 이제 본래의 목적에 맞게 이용되어야 하는 시기이지만, 가설주택은 필요한 물자가 없어서 제대로 진행이 되고 있지 않고... 주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남은 한가지가 현재의 집을 수리해서 다시 살 수 밖에 없기에 집안을 정리한다고 했습니다.

집안으로 들어간 우리(6명으로 한팀)는 먼저 큰 가구나 가전제품을 들어내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작은 가구나 젖은 옷가지와 이불을 들어내었습니다. 그 안에서 발견되는 사진이나 앨범이 발견될 때마다 그집 주인아주머니에게 가져다 드렸는데, 그 사진의 주인공인 4살짜리 남자아이는 이번 재해 때 잃었다고 하며, 그나마 사진이라도 구해서 너무 기쁘다는 감사인사를 우리에게 하였습니다.

가족, 그것도 자식을 잃은 어머니에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한동안 뒤로 돌아서 눈물만 훔쳤습니다.

그 아이의 유품이라고 할 수 있는 장난감 등이 발견되면 따로 모아 두었습니다. 그것들이 그 아이를 대신하지는 못하겠지만, 그것이라도 있는 것이 최소한 위로가 될 것 같기에...

집안에는 건질 것이 정말 하나도 없었습니다. 식기도 옷가지도 가구도... 모든 것이 젖고 깨어지고 더럽혀진 상태이고 또한 수도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기에 씻어서 사용한다는 것은 더욱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 많은 것들은 그냥 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밖으로 옮기고 옮기고... 또 옮기는 작업을 2시간넘게 한 후 겨우 바닥에 깔린 뻘을 치울 수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삽질을 잘 못하더군요. 뭐 여자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남자들도 삽을 처음 들어본 것 같이 삽질을 하는게 조금 우스웠습니다. 불안하고 서툰 삽질이지만 땀을 흘리며 쉼없이 작업을 계속 하는 그들을 보면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자신을 잘 표현하지 않는 일본인들... 드러내고 나서기를 싫어하는 일본인들이 남을 돕기 위해 먼 시간을 참고 달려와서 열심히 일하는 이 사람들은 정말 용기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드디어 바닥.. 부엌이외에는 모두 다다미방... 물과 뻘을 흠뻑먹은 다다미는 정말 무거웠습니다. 처음에 2명이 한 조가 되어 들어내었는데... 힘이 빠지고 다다미의 중간부분의 처지니... 잡은 부분이 미끄러워 자꾸 놓치고, 놓치지 않으려고 힘을 주다 보니... 몇 개 옮기지 않았는데, 벌써 손아귀힘이 빠졌습니다.

다다미를 다 들어내고 바닥에 남은 뻘을 삽으로 들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화장실과 욕실에도 뻘이 두껍게 깔려 있었습니다. 화장실은 넘쳤는지 특유의 냄새까지...

아직 끝내지 못했는데 오전시간이 다지나갔습니다.

함께 한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겠지만, 체력의 한계를 느꼈고 결과에 대한 실망감-아직 한 채도 끝내지 못했다는-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이미 몸은 지칠대로 지치고, 배도 고파서 점심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점심식사는 먼지가 흩날리는 곳에서 먹게 될 것이라고 짐작했었는데, 앞에 잠시 언급한 나가사토라는 영감님께서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그 분 집 마루에 앉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속도로에서 마지막으로 쉰 휴게실에서 구입한 빵이나 오니기니(삼각김밥)를 주로 먹었지만, 나는 집사님께서 정성스럽게 만들어주신 주먹밥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함께 일한 주변의 아줌마(?)에게도 나눠주면서 ...

식사를 마치고, 잠시 앉아 있는 우리에게 영감님은 자신이 겪은 일들을 차분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경보음이 울리자마자 가족들을 데리고 피난하려고 했지만, 불편한 모친과 그 모친을 돌보는 아내, 손자까지 챙기다보니 츠나미는 벌써 눈앞에 닥쳐왔고, 피할 겨를없이 집안으로 들어닥친 츠나미에 휩쓸리는 가운데 겨우 모친을 집 2층으로 옮기고 난 뒤 몇 번을, 잠긴 집 1층에 뛰어 들어 함께 움직이지 못한 아내와 손자를 찾았습니다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2층에서 보는 광경에는 떠내려가며 살려달라는 이웃집 할머니, 이웃들 그리고, 어디선가 떠내려온 차량들.... 이 어지럽게 떠내려 가고 있었습니다.

마을은 해안에서 가깝지만, 그나마 조금 높은 지역이라서 2층까지는 츠나미가 덮치지 않았습니다. 수 일이 지난 후, 물이 빠지고 이곳저곳에 부서진 가옥의 일부와 떠내려온 가전제품, 옷가지 등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치우는 중에 손자의 손이 발견되었고, 그 손을 따라 손자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손자의 다른 손은 자신의 아내인 할머니 손에 잡혀 있는 상태로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무력하게 손자와 아내를 떠나보낸 나까사토 영감님은 이미 체념한 듯 담담하게 우리에게 그 때의 일을 전해 주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 너무나 뚜렷하게 느껴진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어떠했을까? 아내와 아이가 그렇게 떠나갔다면... 나는 어떠했을까... 내가 계속 내가 믿어온 하나님을 계속 믿을 수 있을까?

계속 내가 저지른 일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우리 하나님은 못하시는 것이 없는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하셨거나, 바라만 보고 있었거나...

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 분의 계획속에서 일어난 이 일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느꼈습니다. 이들의 가족과 이웃이 죽고, 살던 터전이 무너진 것에 대한 책임이 나에게도 있다는 것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것을 알려 주시려고 이 곳... 상처입은 영혼들이 있는 이시노마키로 인도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쉬던 몸을 일으켜 작업현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남은 뻘을 들어내고 집안을 정리한 다음, 밖으로 나와 다른 현장으로 가기를 기다리며 잠시 쉬었습니다.  우리 팀에 속한 두 명의 여자 중 한 명에게 찍은 사진을 공유해 달라고 요청을 하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왜 참석했는지.. 이런 것은 묻지 않았습니다.

남은 시간은 이제 2시간정도...

골목 안쪽 DUNLOP이라는 간판이 달린 집이었습니다. 가게를 겸하는 집이었는데, 그 집에도 아이들의 장난감이며 사진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안부를 물어 볼 수 없었습니다. 그냥 시키는 일을 하는 것밖에는 그들을 도울 길이 없었습니다. 새로 지은 집인듯 1층의 방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마룻바닥이었습니다. 물먹은 다다미를 옮기는 작업이 역시 있었는데, 첫 번 째 다다미를 들어내는 도중에 이미 그것을 옮길 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계속 집안내의 뻘을 들어내는 작업을 도맡아서 계속 삽질을 했습니다. 이 집에 들어가서는 마치는 시간까지 계속 삽질을 한 것 같습니다. 뭐랄까 한계를 넘어섰지만, 멈출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계속 의식했기 때문에 쉴 수 없었습니다.

다른 팀도 참가를 해서인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끝내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제대로 인사도 못했습니다.

미니버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이미 작업을 끝내고 돌아온 팀은 씻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다들 출발할 때의 긴장한 표정에서 약간이나마 도울 수 있었다는 기쁨을 안은 듯 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고, 개인적으로는 만족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이런 도움도 그 곳의 사람들에게는 절실히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풀렸습니다.

따로 구입한 갈아입을 옷을 저녁식사하던 곳에 두고 온 바람에 상의만 갈아입고 그냥 버스에 탔습니다. 오면서 감상이랄까... 느낀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에서 생활한 지 십 년이 되어 가지만, 일본사회를 위해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실제 지진이 있었던 때는 한국에 있었고, 그 상황을 실감할 수 없었지만, 일본으로 돌아온 후, 매일 아침저녁으로 접하는 뉴스를 보면서 무엇인가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느꼈던 가해자의 공범인  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느꼈던 것을 그들에게 전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고, 좀더 이런 경험을 쌓아가면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뒤에 진정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난 다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듯 했습니다.

돌아 오는 길은 피곤하여서인지 계속 잠을 자다가 깨고, 또 멍하니 앉아 있곤 했습니다.

오며가며... 카카오톡으로 이야기를 나눈 친구들의 걱정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겠다는 그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길 기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참여를 이해해 준 가족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내게 있어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여러가지 일들에 대해 나만의 생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나에게 보여지는 이상, 어떠한 사명이 있지 않을까 찾고 또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김종길이라는 친구넘에게 받은 책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 바보 청년의사는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를 모든 행동의 장소로 삼았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라는 질문 앞에 예수믿는 나는.. 이라는 말을 붙여봅니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일본땅,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내 이웃이며, 나는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아야 함을 느꼈습니다.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혹시 참가하실 분이 계시면 제게 연락주세요.

첨부한 사진은 같은 팀에서 함께 작업한 하시모토 준이라는 분이 찍은 사진입니다. 제 모습도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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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돈마니

2011/04/18 02:16 2011/04/18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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